우리가 배운 두 가지 성경 이야기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물은 깊은데, 양동이도 없고 줄도 없습니다. 추수하기까지는 넉 달이나 남았는데 예수는 "그대들이 알지 못하는 먹을 것이 나에게 있다.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빵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원하는 것이 실현되었다는 상태에서 그 생각을 즐기고, 그 생각과 하나가 되십시오. 이미 원하는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걸어 나가십시오. 그것을 즐기고 마음의 식단에 믿음을 유지한다면 세상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이 세상 안에서 여러분은 바로 그렇게 될 겁니다.
바베이도스에서 아주 행복한 3개월을 보내고, 1934년에 뉴욕에 돌아왔을 때 저는 수년간 하지 않았던 술, 담배 등 여러 가지 것들을 다시 했습니다.
저는 압둘라가 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네빌, 자네가 이 법칙을 증명한 후에는 정상으로 돌아올 거네. 자네는 무덤으로부터 걸어 나오게 될 거고, 성스러워지고 있다고 믿었던 죽은 과거로부터 걸어 나오게 될 거세. 네빌, 자네가 지금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네. "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다시 지상을 걷게 되었습니다. 1934년 2월, 그날부터 보다 풍성하게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항상 성공만 했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제가 의식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통제해서 현현하고자 하는 생각들에 항상 믿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여러분에게 말한다면, 세상에서 제가 저지른 많은 실수와 실패가 그 말이 틀렸음을 보여줄 겁니다.
하지만 고대의 스승들처럼, 비록 과거에 실패한 듯 보일지라도, 저는 매일매일 이 세상에서 제가 되고자 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판단하는 것을 멈추십시오. 그리고 이성과 감각들이 말하고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그런 후에 새로운 식단에 믿음을 가진다면 여러분이 믿음을 주고 있는 이상을 세상에 나타낼 수 있을 겁니다.
세상에서 바베이도스와 가장 다른 곳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그곳은 뉴욕일 겁니다. 바베이도스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3층이고, 거리에는 야자수와 코코넛 나무 같은 열대성 나무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그런데 뉴욕에서 나무를 보려면 공원을 가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바베이도스의 거리를 걷는 것처럼 뉴욕의 거리를 긔어야만 했습니다. 상상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전부 가능합니다. 저는 실제로 바베이도스의 거리를 걷는 것처럼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상 속에서 코코넛이 늘어선 거리의 향기를 거의 맡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바베이도스에 있었다면 현실적으로 만났을 만한 환경을 마음의 눈 속에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 상상에 믿음을 유지했을 때 누군가가 여행을 취소했고 제가 그 티켓을 받았습니다. 한 번도 제가 집에 오는 걸 생각해본 적 없던 바베이도스에 있는 형이 낯선 편지 하나를 쓸 충동을 갖게 됩니다. 형은 제게 단 한 번도 명령이란 걸 내렸던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명령을 했습니다. 그리고 형은 저를 집으로 방문시키겠다는 생각을 스스로 했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꿈같은 3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1등급 좌석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 주머니에는 선물로 약간의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만약에 제가 이 모든 경비들을 지불했다면 3000달러 정도를 썼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주머니에 있는 동전 하나 쓰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그대가 모르는 길이 있다. 나의 길들은 그대가 이해할 수 없더라."
차원적으로 더 거대한 내부의 자아는 저의 상상을 명령으로 받아들였고, 편지를 쓰도록 형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고, 1등급 좌석 여행을 취소하도록 누군가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거대한 내부의 자아는 제가 하나 되었던 상상을 실현시키도록 필요한 모든 일들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바베이도스에 있다는 느낌과 저를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잠에 들자, 주변 모든 사람의 행동들은 제가 상상한 것에 맞춰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퍼니스위디 선박회사에 가서 승차권을 구걸하고 1등급 좌석을 예약한 사람의 취소를 부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 저의 형한테 편지를 써서 돈을 좀 보내달라고 구걸하거나 승차권을 사달라고 조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형은 그 행동을 스스로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까지도, 형은 저를 집으로 오도록 만들겠다는 마음속 충동이 본인에 의해서 생겼다고 믿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친구 압둘라는 제게 확실히 말했습니다. "네빌, 자네는 바베이도스에 있네. 자네가 그곳에 가기를 원한다면, 그곳이 어디일지라도 자네는 그곳에 있는 걸세. 마치 그곳에 있는 듯 살게. 그러면 그렇게 될 걸세."
모든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두 가지 시선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인지는 상관없습니다.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은 그 인종에 상관없이, 그 국적에 상관없이, 그가 믿는 신조에 상관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두 가지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실적인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영이 주는 것들을 어리석은 것이라 여겨 받지 않는 사람이거나, 영적인 사람으로서 모든 것들은 차원적으로 보다 더 넓은 세상에 지금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 인지하는 사람입니다. 추수하기 위해 넉 달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우물 앞에 있는 사마리아 여인이거나 예수입니다.
여러분은 다섯 행각에서 연못이 흔들리면 누군가가 자신을 밀어 넣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과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공동묘지의 무덤 뒤에 숨어 지내면서 선입견들이 씻겨나가는 것이 두려워,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입니까? 사람들에게서 가장 버리기 힘든 것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미신과 선입견입니다. 무슨 보물이나 되는 듯 이런 것들을 꼭 쥐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씻겨 나가서 자유로워질 때, 여러분의 마음인 자궁은 자동적으로 치유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소망의 씨앗들이 뿌리를 내리고 현현 속으로 자라날 수 있는, 준비된 토양이 됩니다. 지금 가슴 속에서 태어나려는 아이는 여러분이 현재 갖고 있는 소망입니다. 현재 갖고 있는 소망은 아픈 듯 보이는 아이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원하는 모습이 되었다는 태도를 취할 때 더 이상의 흔들림이 사라지기 때문에 아이는 잠시 동안 죽은 듯이 보입니다. 원하던 모습이 된 것을 느낄 때 그 상상 속에서 만족을 느끼기 때문에 여러분은 더 이상 흔들릴 수 없습니다.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겉으로만 보고 판단한다면, 여러분이 더 이상 그것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러분의 바람 혹은 여러분의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더 이상 비밀스러운 야망을 이야기하지 않는 여러분을 보며, 사람들은 여러분이 야망을 잃었구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완벽히 그 이상에 자신을 맞췄습니다. 원하는 모습이 되었단 것을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며, "나는 그녀를 깨우러 간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이미 되었다는 믿음 속에서 걸어 나갑니다. 그렇게 걸어갈 때 잠든 여자아이를 고요하게 깨웁니다. 그리고 그녀가 일어나면, 먹을 것을 주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겁니다. 그것을 떠벌리고 다니거나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 내가 원하는 상태에 주의를 기울여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그것을 내 세상 안에서 유지하기 위해 계속 주의를 기울입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들은 내 세상 속에서 점차 시들어 버립니다. 그것들이 그냥 태어나서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그것들이 되었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그것들에 생명이 생긴 것입니다. 그것들을 내 세상 속에 구현하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입니다. 이제 나는 그 상태를 지속시키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날은 그것에 대한 나의 관심이 멀어진 날이며, 그 상태는 내 세상 속에서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내가 내 세상의 다른 것들에 주의를 기울일 때, 그것들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앞의 장애물에 주의를 기울여서 영양을 공급하고는 그 장애를 산처럼 거대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소망들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이미 원하는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3차원적인 시야와 4차원적인 시야를 이야기할 때, 고대의 교사들이 모든 사람들 마음속의 이 두 가지 초점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충분한 이해 속에서 이 두 가지를 인격화시켰고,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뺏는 유일한 것은 습관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습니다. 습관이라는 것이 법칙은 아니지만, 모든 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데에 가로놓여진 가장 거대한 장애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습관은 철저하게 인간을 한계 속에 묶어둬, 습관이 아니었으면 이루었을 것들에 대해 완전히 눈을 멀게 합니다.
지금 원하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보면서 이미 그 모습이 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 그 느낌 속에서 그것들을 즐기십시오. 저는 성경을 세심하게 살펴보면서, 3일보다 더 긴 기간이 있는지 찾아보았는데 그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어 그들에게, '사원을 무너뜨려라, 그러면 3일 안에 나는 그것을 일으켜 세울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더라." [요한복음 2:19]
"음식물을 챙기어라. 3일 동안 그대는 이 요르단을 건너, 주 하느님께서 너에게 가지라고 주었던 그 땅을 갖기 위해 가게 될 것이라. " [여호수아서 1:11]
만약 하나의 느낌에 마음을 푹 적셔서 이미 사실이 된 것처럼 걸어 나갈 때 믿음만 유지한다면 3일간의 마음의 식단 이상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약속드립니다. (저는 이 위대한 책에서 제가 말씀드린 것과 모순되는 구절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관된 마음을 지녀야만 합니다. 만약 하루 중의 식단을 바꾼다면(믿음을 바꾼다면), 그 기간은 늘어날 겁니다. 여러분은 제게 묻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그 기간에 대해 알죠?" 여러분 자신이 그 기간을 결정합니다.
어떤 단어 하나가 오늘날 우리들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저도 그것을 깊게 살펴보기 전까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작용(Action)"이라는 단어입니다. 작용은 세상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이라 말합니다. 원자는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욱 근원적인 겁니다. 원자의 부분인, 전자 같은 것도 아닙니다. 더욱 더 근원적인 겁니다. 4차원적인 단위라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은 작용(Action)입니다.
여러분은 작용이 무엇인지 물을 겁니다. 물리학자들이 말하기를 작용이란 시간에 의해 증가되는 에너지라고 합니다. 이 말에 더욱 혼란을 느껴, 다시 물을 겁니다. "시간에 의해 증가되는 에너지? 그게 무슨 뜻이죠?" 물리학자들이 대답합니다. "아무리 강력한 자극을 가하더라도 일정한 시간 동안에는 반응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극에 반응하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이 지나지 않는다면,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뒤집어보면,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요구되는 최소한의 자극이 필요하고, 그 자극이 없다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반응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들을 작용, 즉 시간에 의해 증가되는 에너지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 기간을 3일로 잡았습니다. 그 기간은 세상에 대한 반응이 오는 3일을 말합니다. 원하는 모습이 된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믿음을 유지해서 마치 내가 그렇게 된 듯 그 믿음 속에서 걸어 나간다면, 그것이 작용되는 최고 긴 시간은 3일입니다.
정말 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이루어졌다고 가정해보고 현실에서 겪을 만한 일을 상상 속에서 경험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상상 속에서 사실로 받아들인 세계를 거부하는 것들 모두에 대해 귀를 닫고 눈을 감으십시오. 이렇게 한다면 제가 로스앤젤레스를 떠나기 전에 여러분은 저에게 와서, 이전에는 희망사항일 뿐이었던 것들을 현실에서 실현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죽은 듯 보이는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이 지식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것이 저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이 여자아이는 정말로 죽지 않고 단순히 잠들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아이에게 먹을 것을 준다면 그 아이는 여러분의 세상 안에서 부활한, 살아있는 실체가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저와 함께 그 기쁨을 나누고, 여러분의 기쁨 속에서 저 또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강의의 목적은 여러분에게 여러분 자신이 곧 의식의 법칙, 즉 존재의 법칙이라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그 법칙입니다. 단지 그 법칙이 작용하는 것을 모를 뿐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원하지 않는 것들에게 영양을 공급해 생명을 주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린 말씀들을 갖고 이 이론을 직접 시험해보십시오. 이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위안거리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진실이 아니라면 그것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진실이란 것을 압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증명하거나 사실이 아니라고 증명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할 겁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그것들을 직접 시험해보기를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실패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위치는 어떻습니까? 이론들이 정말로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을 시험해볼 정도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이것들이 정말 된다는 것을 꼭 시험해보지 않고서도 알 수 있어. 진짜로 시험해보기는 싫어. 가짜라고 증명되지 않는 한은, 이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잖아."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법칙이 사실이라고 증명하든지, 사실이 아니라고 증명하십시오. 만약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해본다면, 여러분은 사실이라는 것을 밝혀내게 될 것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인해 저는 더 풍요롭게 될 겁니다. 돈이나 물건들을 가져서 풍요롭게 된 것이 아니라, 제가 믿고 여기서 가르치고 있는 것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열매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5일간의 강의가 여러분에게 실망을 주기보다는 여러분에게 성공과 만족을 던져주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제가 가르친 내용들을 갖고 진실인지 진실이 아닌지 증명하기 위해 직접 이 법칙들을 시험해볼 정도로 대담해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