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믿음을 유지하라
오늘 밤 이 강의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그동안 배운 내용을 간략히 정리한 후, 많은 분들이 요청하셨던 세 번째 강의 주제인 4차원적 사고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누군가가 어떤 주제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했다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도 잘 하게 될 것이고 설명도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겨울 바베이도스에서 한 어부가 얼마되지도 않는 어휘를 가지고 돌고래의 행동들에 대해 약 5분 남짓 설명했는데, 셰익스피어가 그 유창한 말솜씨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창하게 잘 설명해줬습니다. 그 어부는 돌고래가 물에 떠다니는 나무 조각을 가지고 노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리고 돌고래를 잡기 위해 나무를 던져 미끼를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이 어부는 사용하는 어휘가 몇 개 안됐지만 물고기와 바다, 그리고 돌고래에 대해서도 잘 알았기 때문에 돌고래의 습성과 돌고래를 잡는 법에 대해 모두 말해줄 수 있었습니다. 알고는 있지만 설명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진정으로 안다면 설명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기도를 정의해 보라고 하고, "기도를 통해서 어떻게 소망을 실현하시겠습니까?"라고 물을 때 대답할 수 있다면, 기도에 대해 아는 겁니다. 대답하지 못한다면 모르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마음의 눈 안에서 어떤 것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훌륭한 말솜씨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들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표현하는 것보다 여러분 마음 안의 생각들을 훨씬 더 아름답고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 떠오를 겁니다.
여러분이 지난 네 번의 강의를 주의 깊게 잘 들었다면 성경이라는 것이 과거에 살았던 어떤 이의 이야기도 아니고, 이 땅 위에서 일어난 어떤 일들을 기록한 것도 아니란 것을 이해했을 겁니다. 성경의 저자는 역사를 쓴 것이 아니라, 역사의 옷을 입혀서 마음에 관한 위대한 드라마를 썼던 겁니다. 그래서 이성적이지 못하고, 분별력이 없는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표현했습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다양한 마음의 특징들을 지닌 바로 여러분입니다. 제가 성경의 이야기 중에서 열두 개 남짓한 이야기들을 뽑아, 해석해 보여주었을 때 이해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예수가 실존 인물이었다면 그렇게 품위가 높고 사랑이 가득 찬 사람이 요한복음 2장에서 그의 어머니에게 "여인이여, 그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아할 것입니다.
이상과 하나 되지 못한 여러분과 저도, 우리의 어머니에게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랑의 화신인 예수가 그의 어머니에게 "여인이여, 그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이고, 여러분의 어머니는 여러분의 의식입니다. 의식은 모든 것의 근원이기 때문에 모든 현상들의 위대한 아버지-어머니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습관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각이 내놓은 증거들을 습관적으로 최종적인 결과로 받아들입니다. 이야기에서 손님들에게 대접할 포도주가 필요하지만 나의 감각기관들이 어디에도 포도주가 없다고 말하니, 나는 또 이걸 습관적으로 최종적인 결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의식은 만물의 근원이고 의식만이 유일한 실체라는 사실을 다시금 마음속에 상기시켜, 감각기관들이 내놓은 증거들을 거부하고 충분한 포도주가 있다는 인식을 사실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는 자신의 어머니, 즉 결핍을 나타내는 인식을 나무랐던 겁니다. 그런 후, 손님들을 대접할 음식들이 충분하다는 인식을 사실로 받아들이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포도주는 제공됩니다.
청중이자 저의 소중한 친구가 보내온 편지 하나를 방금 전 읽었습니다. 그는 지난 일요일, 결혼식 때문에 교회에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계나 그 외에 모든 상황들이 그가 늦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차를 기다리며 길모퉁이에 서 있었지만 한 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마냥 기다리기 보다는 자신이 교회에 도착한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차 한 대가 그 앞에 섰습니다. 친구가 운전기사에게 자신의 곤란한 상황을 말하자, 그 기사가 대답했습니다. "그 길 말고 다른 길로 가겠습니다. 늦지 않게 도착시켜 드리죠." 그리고는 정말 예식이 시작되기 전에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변의 상황들이 늦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거부한 채 법칙을 아주 정확히 사용한 겁니다. 결핍을 나타내는 것들을 절대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주변의 상황이 결핍을 나타내는 경우에,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나의 감각들이 내놓은 증거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모든 통들을 가져와서 그것들을 채우라. 다른 말로 하자면, 내가 포도주와 원하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정합니다. 그러면 더 큰 차원의 나의 자아가 그 가정을 실현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이 성경의 이야기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여인이여 그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말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감각기관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증거들이 결핍을 나타낼 때, 의식의 법칙을 아는 자가 스스로에게 "그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사라져라."라고 말하는 겁니다. 다시는 저런 종류의 결핍을 나타내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다시 귀를 기울인다면 그것들이 말하고 있는 결핍의 씨앗을 내 안에 심게 되어, 결국에는 그 결핍의 열매들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예수가 시장함을 느낄 때의 이야기로 마가복음의 내용입니다.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고, 혹시 거기에 열매가 있을까 하여 다가갔으나,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하셨으니, 무화과의 때가 아직 아니었기 때문이더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무화과나무에게 말씀하시기를, '이후로는 누구도 네게서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고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을 듣더라." [마가복음 11:13, 14]
"그리고 아침에 그들이 지나갈 때,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서부터 말라버린 것을 보더라." [마가복음 11:20]
시들어 버리게 한 나무는 무엇이겠습니까? 바깥세상의 나무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 자신의 의식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이다." [요한복음 15:1] 나의 의식, 나의 IAMness는 위대한 나무인데 습관이란 것이 말하기를, 그곳에는 아직 열매가 없다고, 그 열매를 먹기 위해서는 4개월의 기간이 남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4개월이란 시간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4개월이나 기다려야 된다는 말을, 앞으로는 잠시도 믿지 않을 거라고 강력한 암시의 말을 건넵니다. 이 순간부터 결핍에 대한 믿음의 열매는 다시 열매 맺지 못하고 마음 안에서 다시 태어나지 못합니다.
이 이야기는 나무를 시들게 만든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나무, 도시, 사람들, 모든 것들은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경 속에 나오는 단어 중 인간 마음의 다양한 속성들을 표현하지 않은 것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의식은 만물의 근원이자 유일한 실체입니다. 우리 자신의 의식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후에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오로지 의식 안으로 시선이 향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의 근원이고, 하느님 외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어떤 악한 짓들을 하고 하느님이 또 어떤 다른 일들을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음의 내용들을 주의 깊게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 고레스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잡아 민족들을 그 앞에 굴복시키며, 왕들의 허리를 풀고, 그 앞에 두 개의 문을 열어 그것들이 닫히지 않게 하리라."
"내가 네 앞에 가서, 굽은 곳들을 곧게 하고, 놋문을 부수며, 철문 빗장을 끊으리라."
"또한 내가 너에게 어둠 속의 보물들과 은밀한 장소에 감춰진 부를 주어, 내가 네 이름으로 너를 부른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알게 하리라." [이사야 45:1, 2, 3]
"나는 빛을 창조하고, 어둠을 만들며, 평화를 주기도 하고, 악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 주님이 이 모든 것을 행한다." [이사야 45:7]
"내가 땅을 창조하고 그 위에 인간을 만들었으며, 내 손으로 하늘을 펼쳤고, 그 안에 모든 존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는 그를 의롭게 세우고, 그의 모든 길을 인도할 것이다. 그는 아무런 대가나 보상 없이 나의 도시를 세우고, 나의 포로들을 해방시킬 것이다.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이사야 45:12, 13]
"나는 주이며,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고, 나 외에 다른 신도 없다." [이사야 45:5]
이 말들을 주의 깊게 읽어보십시오. 이 말들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의식이 유일한 실체라는 사실을 깨달은 분들이 한, 영감에 찬 말입니다. 만약 상처를 입었다면 그건 나 스스로 상처를 낸 것입니다. 나의 세상 안에 어둠이 있다면 그것은 나 스스로 만든 어둠, 흐림, 우울함입니다. 빛과 기쁨이 존재한다면 그것 역시 내가 만든 빛과 기쁨입니다. 모든 것들을 행하고 만드는 IAMness 외에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의식 바깥에서는 어떤 원인도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세상은 여러분이 어떤 존재인지 말해주는 거대한 거울입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여러분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자신의 의식 안으로 시선을 돌린다면, 여러분이 하는 기도는 어떤 기도보다 경건한 것이 될 겁니다. 저는 제 시선이 향할 곳은 오로지 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 소망이 성취된 느낌을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감사함을 느끼고 있을 때, 어떤 기도도 제가 하는 기도보다 더 많은 기쁨과 믿음과 경건한 감정을 지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할 때, 이성과 감각들이 거부하는 것들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받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대들에게 말하니, 그대가 무엇을 원하든지, 기도를 할 때 그대가 그것들을 받았다고 믿어라, 그러면 그대는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기도를 할 때, 누군가에 대해서 적대적이라면 용서하라. 그러면 하늘에 계신 그대의 아버지께서도 그대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계신 그대의 아버지께서도 그대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마가복음 11:24, 25, 26]
우리가 기도할 때면, 위에서 말한 대로 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병들어 있다거나 가난하다거나 그런 식의 안 좋은 것들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면, 반드시 그것들을 풀어주어 사라지게 해야 합니다. 말로 사라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 되어 있다고 믿음으로써 사라지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을 완벽하게 용서하는 겁니다. 그에 대한 나의 관념을 바꾸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그를 용서합니다. 완벽하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것(Complete forgetfulness)이 용서입니다. 그 사람의 과거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지 않았다면 용서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진정으로 잊었을 때만이 용서를 한 겁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나는 너를 용서했어."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를 보게 될 때마다, 아니면 그가 생각날 때마다 예전에 그에 대해서 가졌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면, 그를 완전히 용서한 거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용서란 것은 완벽하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작업입니다. 의사는 여러분에게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무언가를 줍니다. 의사는 여러분의 병을 제거한 자리에, 그 무언가로 그곳을 채우려 하는 겁니다. 낡은 관념이 자리 잡았던 곳에 새로운 자아의 관념을 넣으십시오. 낡은 관념을 완전히 버리십시오.
기도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기도가 아니었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 기도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행동의 근원이자, 명령을 내리는 마음이자, 기도를 이루게 하는 자는 바로 나입니다. 성공적으로 기도를 하는 사람은 내부로 시선을 돌리고, 그 안에서 구하고자 하는 상태를 취합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희생물로 바쳐야 할 것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말하기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너는 발버둥 쳐야하며 고통을 인내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여러분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 발버둥 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수많은 희생물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는 숫양의 번제물과 기름진 짐승의 기름으로 배가 불렀고, 나는 황소나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대가 내 앞에 나타날 때, 누가 내 뜰을 밟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그대의 손에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는가?"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 향은 내가 싫어하는 것이라. 새 달들과 안식일과 집회를 모으는 것, 나는 부정한 것들과 엄숙한 집회들을 참을 수 없다."
"그대들의 새로운 달들과 그대들이 정한 명절들은 나의 영혼이 싫어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나에게 커다란 짐이 되었느니. 나는 그것들을 짊어지기에 지치더라." [이사야서 1:11-14]
"그대에게는 성스러운 엄숙함이 지켜질 때의 밤의 노래가 있으며 또 마음의 기쁨이 있으니, 마치 어떤 사람이 관악기를 가지고, 주님의 산으로 그리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자에게로 갈 때와 같더라." [이사야서 30:29]
"주에게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땅 끝에서부터 그를 찬양하라." [이사야서 42:10]
"오, 그대 하늘들아, 노래하라. 주가 그 일을 해내셨기 때문이다. 소리 지르라, 그대 이 땅의 낮은 부분들아. 외치라. 너희 산들아. 오, 숲아! 또 거기 모든 나무들아! 소리 내어 노래할지니. 이는 주가 야곱을 되찾으셨고, 이스라엘로 자신을 영화롭게 하셨음이라." [이사야서 44:23]
"그러므로 주의 되찾은 자들이 돌아올지니, 그러면 시온으로 노래 부르며 돌아오리라. 그리고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것이며, 슬픔과 애도는 멀리 달아나리라." [이사야서 51:11]
하느님께서 유일하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기쁨에 찬 가슴입니다. 노래 부르고 찬양하면서 오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의식인, 하느님 앞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소망이 성취되었다는 느낌을 사실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하느님께서 유일하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을 가져오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소망이 성취되었다는 마음의 상태 외에는 싫어합니다. 그것 외의 것들은 미신이고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원하던 것이 일어났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내 앞에 올 때 기뻐하십시오. 내 앞에 올 때, 노래를 부르고 찬양하고 감사하면서 오십시오. 이 마음의 상태들은 구하고 있는 상태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올바른 감정 속에 자신을 놓는다면, 여러분 자신의 의식이 그것들을 현현시킬 것입니다.
저에게, 기도를 정의해서 최대한 명확하게 말해보라고 한다면, 전 간단하게 "기도는 소망이 성취된 느낌입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기도가 응답받은 상황 속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 그 확신 속에서 살면서 행동하는 겁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저는 그 느낌을 노력 없이 유지시키려 할 것입니다. 즉, 확고한 마음가짐을 갖고 걸어 나간다면 마음속에서 사실로 받아들인 것들이 현실로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 이미 원하는 것들이 현실이 된 것처럼 살며 행동할 겁니다.
성경이 역사에 대해 쓴 것이 아니냐는 논쟁을 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앞서 진행했던 네 번의 강의를 주의 깊게 들으셨다면 더 이상의 증거는 원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여러분이 배우셨던 것들을 직접 적용하신다면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