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이라 주장하라

네빌 고다드 라디오 강의 Chapter 1 의 내용입니다. 1951년 라디오 강의입니다. Chapter 1 BE WHAT YOU WISH; BE WHAT YOU BELIEVE

BE WHAT YOU WISH; BE WHAT YOU BELI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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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BE WHAT YOU WISH; BE WHAT YOU BELIEVE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이라 주장하라


진실하게 생각하라.
그러면 그대의 생각이 세상의 기근에 먹을 것을 가져다줄 것이다.
진실하게 말하라.
그러면 그대의 말 하나하나가 풍작을 가져오는 씨앗이 되어줄 것이다.
진실하게 살아라.
그러면 그대의 생이 위대하고 고귀한 신조가 되어줄 것이다.
-호라티우스 보나르



한 신문기자가 이 시대의 위대한 과학자 로버트 밀리컨이 했던 말을 제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현재 뛰어난 저작들과 업적들로 유명하지만,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이미 자신의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는 위대함과 안정이라는 목표를 하나의 간단한 문장으로 압축했습니다. 이는 위대함과 경제적 풍요가 이미 현실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장이었습니다. 그는 위대함과 경제적 안정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완전히 채우고 다른 생각들을 몰아낼 때까지 이 문장을 끊임없이 반복했습니다. 물론 그 문장은 밀리컨 박사가 직접 제게 전해준 말은 아니지만, 신문기자가 들었다는 그대로입니다. 제가 인용해보겠습니다.

정직하면서 공동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고정적이고 믿을 수 있는, 아주 많은 수입이 있다.

그가 이것을 반복했을 때 주변 모든 상황들은 자신의 관념에 맞춰 변화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고 확언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삶에서 펼쳐지지 않습니다.
밀리컨 박사는 위대함과 경제적 안정이라는 자신의 꿈을 1인칭에 현재형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나는 위대한 일을 할 것이다. 혹은 나는 경제적 안정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렇게 했다면 자신은 위대하지 않고 경제적 안정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었을 것입니다. 대신에, 미래의 꿈을 현재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정직하면서 공동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고정적이고 믿을 수 있는, 아주 많은 수입이 있다”라고 말입니다.
꿈을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속에서 미래의 꿈을 현실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 경험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을 상상 속에서 먼저 경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영혼이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다고 상상한다면 그 결과의 옷을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다고 상상하지 않는다면, 모든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 가르침의 목적은 우리를 더 높은 의식 상태로 끌어올리고, 우리 안에 있는 가장 고귀한 것을 확신과 자기 선언으로 일깨우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귀한 것을 일깨우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스승이자 치유자입니다.

성경에서 교정의 관점에서 가장 먼저 제시되는 단어는 “일어나라(Arise)”입니다. 이 말이 성경에서 반복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우리 우주가 내면적으로 무한한 의식의 단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은 그 안에서 자신이 머무는 의식의 수준에 따라 존재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식 안에서 고양된다면 외부 세상은 정신적으로 들려진 그곳에 맞춰서 다시 재건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 정신적으로 고양된다면 지금의 상태를 벗어난, 보다 개선된 모습이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두고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만약 지금의 상태를 바꾸고 싶다면, 밀리컨 박사처럼 현재의 자아를 넘어 더 높은 의식의 단계로 올라서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이미 되었다고 주장하고 소망이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사실로 받아들임으로써 이런 높은 의식의 단계로 올라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드라마를 보세요. 이 인생이란 드라마는 사실, 우리의 외부적인 행동에 의해서 펼쳐지는 드라마가 아닌 우리의 정신적인 마음 태도로 인해 펼쳐지는 “마음에 관한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현재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마음속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들은 우리의 마음 태도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아니,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모습을 자신의 모습이라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 모습은 삶에 드러나지 않고 우리는 계속 현재의 모습에 머물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온유한 사람 혹은 순종적 사람에 대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온유한 사람’으로 번역된 미크맨(meek man)이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가난하고 비굴하며 학대를 묵묵히 참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을 하찮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긴다면, 그는 생명의 고귀한 목적을 잃어버린 채, 스스로를 그런 존재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 보잘것없는 생명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외형만으로 자신을 판단해서는 안 되며, 밀리컨 박사처럼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아직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담대히 주장하는 것입니다.

나는 정직하면서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는,
고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많은 수입이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바로 복음서에서 말하는, 이 땅을 물려받게 될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관념은 계속 더 커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관념이라도 그것이 최상의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 땅의 상속권을 완전히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주어진 약속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이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입니다. 이 ‘온유’라는 단어는 원어에서 ‘분노하고 성내는 것’의 반대말이며, 야생 동물이 조련되는 것처럼 ‘길들여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포도나무를 보라.
그것은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힘으로 뒤엉킨 야생의 나무였다.
내가 그것을 가지치기 하자,
쓸모없는 잎사귀들의 희생을 통해 나무는 온순하게 자라났고,
지혜롭게 상처를 입힌 내 손에 감사하듯,
엉켜 있던 가지는 탐스럽고 알찬 포도송이로 변화했다.

온유한 사람, 다시 말해 미크맨은 자신을 훈련한 사람입니다. 마음을 훈련시켰기에 보이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만을 보고, 가장 최상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바로 다음의 명령을 완수한 사람입니다.

형제들이여,
무엇이든 진실하다면, 무엇이든 정직하다면,
무엇이든 정의롭고, 무엇이든 순수하며,
무엇이든 사랑스럽고 평판이 좋다면,
어떤 덕이 있고, 칭찬할 만한 것이 있다면
이러한 것들만을 생각하라!
-빌립보서 4장 8절

우리의 열정을 억눌렀을 때 의식의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미덕을 길렀을 때에야 의식의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이란 자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사람, 아니 가장 고양된 상태에 두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고양된 것들과 함께 걸어가기를 원한다면 고양된 감정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밀리컨 박사처럼 자신들의 인생의 행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밀리컨 박사가 사용한, 자신의 미래의 꿈을 현재의 사실로 만드는 기법은 ‘진리’를 찾는 구도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밀리컨 박사의 높은 목표는 ‘공동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결국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피할 수 없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사실, 모두의 선을 상상하는 것이 오직 자기만을 위한 상상보다 훨씬 쉽습니다. 우리는 상상과 자기 선언을 통해 세상과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특히 높은 목적을 지닌 훈련된 사람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그런 훈련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 주 일요일인 7월 15일 오전 10시 30분, 라시에네가 인근 윌셔 볼레바드의 폭스-윌셔 극장에서 베일스 박사의 초청으로 강연할 예정입니다. 주제는 “미래를 바꾸기”이며, 모두에게 친숙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일요일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어떻게 하면 훈련된 사람, 곧 ‘미크맨’이 되어 인류 전체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지를 배워가시기 바랍니다.

이 메시지를 주의 깊게 읽는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신속한 반응과 메아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것이 일상 속 환경들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감정과 환경 사이의 관계를 확신하게 되면, 우리는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상황이 우리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삶을 창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감정의 변화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고양된 감정은 더 높은 의식 수준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고양된 감정 또는 그러한 감정들이 모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형성해야 합니다.
개인과 공동체 모두, 더 높은 이상을 향해 나아갈수록 영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상이 낮아지면 바닥까지 가라앉고, 이상이 높아지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까지 상승합니다. 여러분이 가장 고귀한 것들과 함께하고자 한다면, 그에 걸맞은 고양된 감정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 높은 곳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창조적 상상에는 반드시 감정이 수반됩니다. 감정은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촉매제로, 이것 없이는 어떤 창조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현재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만약 자신에 대해 불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서 진보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아름다운 삶을 원하고, 더 큰 이해, 더 나은 건강, 더 안정된 재정을 바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요한복음 16장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인류는 반드시 영적인 부활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영적인 부활은 밀리컨 박사처럼 개개인이 새롭고 더 높은 자아 관념에 대한 욕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뜻합니다.
한 국가가 집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지혜는 그 구성원 개인들이 가진 지혜를 넘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항상 자기계발을 강조해 왔습니다. 우리가 자신에 대한 새롭고 더 높은 개념을 구현하려는 열정을 품고 노력한다면, 그 외의 모든 도움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은 이미 새로운 모습을 갖추고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에 ‘인간의 부모’를 안겨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 땅에 태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 이미 실현된 것처럼 확신하고, 그러한 삶을 실제로 살아야 합니다. 밀리컨 박사처럼, 그 확언이 겉보기에는 거짓처럼 보여도 끈질기게 지속한다면 결국 그것은 현실로 굳어질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인간은 외형을 쫓아 판단하지 않고 이상을 쫓아 판단합니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판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서 바라봅니다. 그는 자신이 듣기 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는 오직 좋은 것만을 보고 듣습니다. 그는 진리를 압니다. 그러면 그 진리는 그를 자유롭게 만들고 선한 방향으로 이끕니다. 더 나아가 진리는 모든 인류를 자유롭게 만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영적인 부활입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어디에 주의를 집중하며 사느냐에 따라, “나”라는 인격이 형성됩니다.






진실하게 생각하라.
그러면 그대의 생각이 세상의 기근에 먹을 것을 가져다줄 것이다.

진실하게 말하라.
그러면 그대의 말 하나하나가 풍작을 가져오는 씨앗이 되어줄 것이다.

진실하게 살아라.
그러면 그대의 생이 위대하고 고귀한 신조가 되어줄 것이다.

-호라티우스 보나르


침묵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