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NO BARRIER BUT SELF
Chapter 1 NO BARRIER BUT SELF
유일한 장벽, 나
상상력을 노래한 위대한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거장이었습니다. 시인들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인에게 주어진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블레이크는 역사를 소재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는 역사를 시로 표현하기보다는 자신의 믿음을 노래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비전들은 상상력에 대한 위대한 책인 성경과 일치했을 뿐만 아니라, 블레이크가 경험했던 것들과도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셨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건들이 제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이 비전들에 대해 말하고 기록할 수는 있지만, 여러분이 그것을 직접 경험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블레이크가 “인간은 상상력 그 자체이며, 하느님은 인간이고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는 하느님 안에 존재한다”라고 했을 때, 저는 그 말이 진실임을 압니다. 인간의 불멸의 몸은 상상력이며, 그것이 곧 하느님 그 자체입니다.
블레이크는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시라는 형태로 기록하면서 “앎을 얻는 참된 방법은 실험이며, 앎의 진정한 능력은 경험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바로 이 능력입니다.
1925년 런던을 방문했을 때, 저는 한 연세가 지긋한 스코틀랜드 신사분을 만났습니다. 그는 제 마음가짐이 제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가 이 삶에 끌려다닐 필요가 없으며, 생각을 통제해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굉장히 매혹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저의 내세울 것 없는 학력과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들을 초월할 수 있다니, 그것은 참으로 매혹적인 말이었습니다. 이 신사분은 제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을 보고 저에게 약 스무 권에서 서른 권 정도의 책을 주었습니다. 그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목마름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1927년에 저는 아스트럴 투사(astral projection)를 의도치 않게 처음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 특별한 밤, 호텔 방에서 제 머릿속에 독특한 감각이 시작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감각이 점점 더 강렬해졌을 때 저는 제 몸에서 튕겨져 나와, 해변에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렸고, 제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 소망을 품는 순간, 다시 제 방에 있는 육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제가 호텔 방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감고 머릿속의 그 느낌을 강렬하게 만들자 다시 몸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 안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방을 돌아다니며 침대 위에 놓여 있는 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몸은 선명하게 보였으나, 구름 같은 흰 물질이 머리를 덮고 있어 얼굴이 잠깐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영이기 때문에 벽도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도했지만, 벽이 너무나 단단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분한 마음에 이번에는 벽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부딪혀 기절했고, 큰 두통과 함께 육신 안에서 깨어났습니다.
몇 달 후, 저는 다시 제 육신의 제약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전의 경험을 떠올리며 조용히 다른 곳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오로지 상상력 그 자체임을 깨달았습니다. 벽을 통과하지 못했던 것은, 제가 벽에 현실성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방 안에 현실성을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 있다고 상상하는 순간 저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움직였다는 느낌조차 없이 말입니다.
이것저것 실험을 해보면서, 제 자신만이 유일한 장벽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리석다는 느낌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제 안에 자리 잡아 저를 제한하고, 제 소망이 실현되는 것을 막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상상력이라는 재능을 발휘하는 것은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달린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블레이크가 말하듯, “인간은 상상력 그 자체이며, 하느님은 인간”입니다.
지금 당장 스스로에게 당신이 상상력 그 자체임을 증명해 보십시오. 고린도후서 5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의 천막이 파괴되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집을 가지게 되니, 그것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울은 이 지상의 몸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파괴될 때,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을 우리가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두르고 있는 육신은 불투명과 한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이 육신의 두개골에 들어갔을 때 상상력 그 자체인 당신은 스스로를 그런 제한 속에 두었습니다. 그 순간, 상상력은 살아 있는 영혼이 되었습니다. 이 제약 속에서 하느님은 돌이켜 깨어나며, 당신이 하느님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때, 오직 그때에만 당신은 손으로 짓지 않은 하늘나라의 영원한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저의 책 『믿음으로 걸어라(Your Faith is Your Fortune, 1941)』에서 저는 “태초에 조건 지어지지 않은 존재의 인식이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조건 지어지지 않은 의식은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상상함으로써 스스로를 조건 지었습니다. 조건 지어지지 않은 존재의 인식은 그것이 스스로를 상상한 것이 되었고, 그렇게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 글을 썼을 때, 저는 교육받지 못했고 블레이크에 대해선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불과 6년 전에서야 블레이크를 알게 되었고, 그때 제가 경험했던 것을 블레이크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블레이크가 했던 “앎을 얻는 참된 방법은 실험에 의한 것이고, 진정한 앎은 경험에 의한 것이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실임을 압니다.
저는 저 자신을 영으로 느꼈지만, 벽을 통과하지 못한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다른 곳에 있다고 상상했을 때에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진정한 여러분은 오직 상상력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직접 상상력을 시험해 보세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한 멋진 목표를 세워 보세요.
주의 깊게 들어보면 머리 안에서 “쉿쉿” 소리가 두 가지로 나는 것을 듣게 될 것입니다. 왼쪽에서 나는 것은 매우 날카로운 소리이고, 오른쪽에서 나는 것은 간간이 잡히는 라디오 신호처럼 들립니다. 그 쉿쉿 소리에 집중한 다음, 마치 플레이어에 음반을 놓듯 친구의 목소리를 그 소리에 담아보세요. 당신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친구가 당신에게 말하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이제 여러분은 그 상상 속의 대화가 현실임을 믿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생각은 항상 여러분 내면의 대화 안에서 진행되는 트랙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말하는 존재입니다.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말이든, 외부에서 실제로 말하는 것이든, 어떤 형태로든 말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 둘 다 없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습니다.
상상 속에서 들은 말을 믿으세요. 그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외부 세상에서도 그 말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상력은 영원히 현실을 창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하느님 사이에 어떤 중재자도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바로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고요히 앉으세요. 그리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 있다고 상상하십시오. 잊지 마세요! 당신은 그 몸뚱이가 아닙니다. 당신은 영이자 상상력 그 자체이며, 상상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왜냐하면 당신의 육신은 당신이 상상 속에서 경험했던 여정을 반드시 현실로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한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회사를 대표해 스웨덴에 가고 싶었지만, 막 입사한 자신에게 그런 제안을 할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비행기 탑승구를 오르는 느낌을 상상해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미국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비행 중임을 느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 후 비행기가 착륙하는 것을 느끼며, 스웨덴에 도착해 주변에서 스웨덴어가 들리는 것을 상상하라고 했습니다.
6개월이 지났을 때, 이 신사분은 회사를 대표해 스웨덴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그는 제 조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아름다운 물방울 모양의 크리스털 꽃병을 제게 선물했습니다. 상상은 그것 안에 스스로를 현실로 펼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상력이야말로 불멸하고 창조력을 지닌, 당신의 진정한 몸입니다.
상상 속 당신이 있는 곳으로 육신을 갖고 가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당신의 의식이 있는 곳에 존재합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은 창조 행위가 아닙니다. 소망을 생각하면 안 되고, 그 소망이 이미 이루어진 상태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I AM”은 길입니다. “나는 ~이었다” 혹은 “나는 ~일 것이다”는 선언은 결코 변화를 만들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는 존재가 길이 아닙니다. “I AM”이 길입니다! 다시 말해 의식이 길입니다! “I AM”은 하느님의 영원한 이름입니다. “그분의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I AM”이라고 답하십시오.
욕망은 그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질 때까지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고 싶다면, 샌프란시스코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곳에 있다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으면서 샌프란시스코에 가고 싶다고 바라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물러서, 당신의 세상을 바라보세요.
당신은 지금 원하는 상태에서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자신을 살펴본다면, 소망을 생각하는 중인지, 소망이 이루어진 상태로부터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소망이 성취된 상태로부터 세상을 보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여전히 자신을 지금 이곳에 그대로 묶어 놓고서 소망하는 중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소망이 이루어진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습니다.
당신이 상상력 그 자체이기에, 상상 속에서 당신이 있는 곳에 실제로 존재하게 됩니다. 당신이 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말할 때, 그 묘사가 소망이 이루어진 상태로부터 바라본 세상이고 그것을 충실하게 유지한다면 소망은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성경은 상상력에 대한 위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직 그렇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블레이크는 “바보에게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대의 현자들은 명확하게 의미가 드러나지 않을 때가 오히려 가르치기 적합하다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배우고자 할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세, 솔로몬, 이솝, 호머, 플라톤에 대해 말합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순수한 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편과 예레미야에서는 이 일련의 사건들을 시의 형태로 나타냅니다.
누가복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을 처음부터 목격하고 말씀의 일꾼이었던 사람들에게 전해진 대로 기록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더라. 나도 처음부터 모든 일을 꼼꼼하게 살펴본 후 가장 존경하는 데오빌로에게 차례대로 기록하여, 당신이 이미 배운 것들에 대한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나이다.”
누가가 이야기를 전하는 대상인 데오빌로는 하느님을 더 알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상태에 있는 자를 말합니다. 바로 여러분입니다. “데오빌로”라는 이름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를 뜻합니다.
누가는 성경의 사건들을 기록하려 했던 이들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경의 사건들이 시간 순으로 정확하지 않음을 알고, 순서대로 기록하려고 합니다. 누가는 목자들이 밤에 양들을 지키고 있는 이야기와 하늘에서의 합창 사이에는 수년의 시간적 간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경우에는 천사들의 합창 후 15년이 지나 목자들이 양을 지키는 이야기가 나타났습니다. 누가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순서를 이야기 형식으로 전하며, 이전보다 더 잘 배열했다고 주장합니다.
만일 당신이 그가 전한 말을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해석한다면 결코 그것이 담고 있는 신비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원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일련의 사건들은 각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여성에게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은 이 경험들을 모두 겪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스스로를 깨우는 과정입니다.
전도서의 “그분은 영원을 인간의 마음 안에 두셨더라”는 말처럼, 하느님은 실제로 그분 스스로를 우리 안에 눕혔습니다. “영원(eternity)”이라는 단어는 “소년, 젊은이, 청년”을 뜻합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있던 아이가 바로 이 “영원”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을, ‘아들로서의 하느님’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모든 존재 안에 내재된, 아버지로서의 하느님, 아들로서의 하느님, 성령으로서의 하느님은 깨어나서 하느님의 아들로 나타납니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근원 안에 있는 무한한 사랑은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입니다. 창조의 표현 속에서 드러나는 무한한 사랑은 아들 하느님입니다. 영원히 계속되는 무한한 사랑은(Infinite Love in eternal procession) 성령으로서의 하느님입니다. 이 셋은 하나입니다!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의 무한한 사랑입니다! 이보다 더 간결한 표현은 없습니다.
존재에 대한 이 멋진 개념을 받아들이세요. 머릿속에서 들리는 쉿쉿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 소리에 당신이 듣고 싶은 말을 담아, 그 말이 현실이라고 믿으세요. 이 말들에 믿음을 지닌다면 그 무엇도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당신과 하느님 사이에 어떤 중재자도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과 하느님 아버지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블레이크가 했던 것처럼, 당신이 지닌 하늘나라의 재능을 사용하세요. 블레이크는 자신의 신비한 경험들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육신을 벗어나는 법을 알았으며, 정신적 여행자가 되어 그의 여행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남자들의 땅을 여행했고, 남자와 여자의 땅도 여행했으며, 차가운 땅을 떠도는 방랑자들이 결코 알 수 없는 끔찍한 것들을 보고 들었다.”
그런 다음 그는 아이의 탄생을 멋지게 묘사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는 기쁨 속에서 태어나지만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잉태되었네. 쓰라린 눈물로 뿌린 열매를 기쁨 속에서 거두는 것처럼.”
“그리고 만약 태어난 아이가 남자라면 그 아이는 나이 든 여인에게 맡겨지고, 그녀는 아이를 바위에 못 박고, 그의 비명을 황금잔에 받아낸다.” 당신은 이 육신에 못 박혀 있지만, 육신에서 벗어나 블레이크가 시에서 말한 청년처럼 강해질 수 있으며, 이 육신을 통해 당신이 세상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당신의 상상력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에게 모든 것은 가능합니다. 당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생각에 충실히 머물면, 아무것도 당신이 그것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기억하세요. 당신 앞에 놓인 장벽은 실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외부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소망하는 그 상태에 거한다면, 당신은 그 모습이 될 것입니다.
유일한 장벽, 나
상상력을 노래한 위대한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거장이었습니다. 시인들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인에게 주어진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블레이크는 역사를 소재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는 역사를 시로 표현하기보다는 자신의 믿음을 노래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비전들은 상상력에 대한 위대한 책인 성경과 일치했을 뿐만 아니라, 블레이크가 경험했던 것들과도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셨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건들이 제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이 비전들에 대해 말하고 기록할 수는 있지만, 여러분이 그것을 직접 경험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블레이크가 “인간은 상상력 그 자체이며, 하느님은 인간이고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는 하느님 안에 존재한다”라고 했을 때, 저는 그 말이 진실임을 압니다. 인간의 불멸의 몸은 상상력이며, 그것이 곧 하느님 그 자체입니다.
블레이크는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시라는 형태로 기록하면서 “앎을 얻는 참된 방법은 실험이며, 앎의 진정한 능력은 경험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바로 이 능력입니다.
1925년 런던을 방문했을 때, 저는 한 연세가 지긋한 스코틀랜드 신사분을 만났습니다. 그는 제 마음가짐이 제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가 이 삶에 끌려다닐 필요가 없으며, 생각을 통제해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굉장히 매혹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저의 내세울 것 없는 학력과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들을 초월할 수 있다니, 그것은 참으로 매혹적인 말이었습니다. 이 신사분은 제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을 보고 저에게 약 스무 권에서 서른 권 정도의 책을 주었습니다. 그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목마름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1927년에 저는 아스트럴 투사(astral projection)를 의도치 않게 처음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 특별한 밤, 호텔 방에서 제 머릿속에 독특한 감각이 시작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감각이 점점 더 강렬해졌을 때 저는 제 몸에서 튕겨져 나와, 해변에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렸고, 제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 소망을 품는 순간, 다시 제 방에 있는 육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제가 호텔 방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감고 머릿속의 그 느낌을 강렬하게 만들자 다시 몸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 안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방을 돌아다니며 침대 위에 놓여 있는 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몸은 선명하게 보였으나, 구름 같은 흰 물질이 머리를 덮고 있어 얼굴이 잠깐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영이기 때문에 벽도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도했지만, 벽이 너무나 단단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분한 마음에 이번에는 벽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부딪혀 기절했고, 큰 두통과 함께 육신 안에서 깨어났습니다.
몇 달 후, 저는 다시 제 육신의 제약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전의 경험을 떠올리며 조용히 다른 곳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오로지 상상력 그 자체임을 깨달았습니다. 벽을 통과하지 못했던 것은, 제가 벽에 현실성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방 안에 현실성을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 있다고 상상하는 순간 저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움직였다는 느낌조차 없이 말입니다.
이것저것 실험을 해보면서, 제 자신만이 유일한 장벽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리석다는 느낌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제 안에 자리 잡아 저를 제한하고, 제 소망이 실현되는 것을 막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상상력이라는 재능을 발휘하는 것은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달린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블레이크가 말하듯, “인간은 상상력 그 자체이며, 하느님은 인간”입니다.
지금 당장 스스로에게 당신이 상상력 그 자체임을 증명해 보십시오. 고린도후서 5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의 천막이 파괴되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집을 가지게 되니, 그것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울은 이 지상의 몸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파괴될 때,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을 우리가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두르고 있는 육신은 불투명과 한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이 육신의 두개골에 들어갔을 때 상상력 그 자체인 당신은 스스로를 그런 제한 속에 두었습니다. 그 순간, 상상력은 살아 있는 영혼이 되었습니다. 이 제약 속에서 하느님은 돌이켜 깨어나며, 당신이 하느님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때, 오직 그때에만 당신은 손으로 짓지 않은 하늘나라의 영원한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저의 책 『믿음으로 걸어라(Your Faith is Your Fortune, 1941)』에서 저는 “태초에 조건 지어지지 않은 존재의 인식이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조건 지어지지 않은 의식은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상상함으로써 스스로를 조건 지었습니다. 조건 지어지지 않은 존재의 인식은 그것이 스스로를 상상한 것이 되었고, 그렇게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 글을 썼을 때, 저는 교육받지 못했고 블레이크에 대해선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불과 6년 전에서야 블레이크를 알게 되었고, 그때 제가 경험했던 것을 블레이크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블레이크가 했던 “앎을 얻는 참된 방법은 실험에 의한 것이고, 진정한 앎은 경험에 의한 것이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실임을 압니다.
저는 저 자신을 영으로 느꼈지만, 벽을 통과하지 못한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다른 곳에 있다고 상상했을 때에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진정한 여러분은 오직 상상력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직접 상상력을 시험해 보세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한 멋진 목표를 세워 보세요.
주의 깊게 들어보면 머리 안에서 “쉿쉿” 소리가 두 가지로 나는 것을 듣게 될 것입니다. 왼쪽에서 나는 것은 매우 날카로운 소리이고, 오른쪽에서 나는 것은 간간이 잡히는 라디오 신호처럼 들립니다. 그 쉿쉿 소리에 집중한 다음, 마치 플레이어에 음반을 놓듯 친구의 목소리를 그 소리에 담아보세요. 당신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친구가 당신에게 말하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이제 여러분은 그 상상 속의 대화가 현실임을 믿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생각은 항상 여러분 내면의 대화 안에서 진행되는 트랙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말하는 존재입니다.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말이든, 외부에서 실제로 말하는 것이든, 어떤 형태로든 말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 둘 다 없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습니다.
상상 속에서 들은 말을 믿으세요. 그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외부 세상에서도 그 말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상력은 영원히 현실을 창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하느님 사이에 어떤 중재자도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바로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고요히 앉으세요. 그리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 있다고 상상하십시오. 잊지 마세요! 당신은 그 몸뚱이가 아닙니다. 당신은 영이자 상상력 그 자체이며, 상상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왜냐하면 당신의 육신은 당신이 상상 속에서 경험했던 여정을 반드시 현실로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한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회사를 대표해 스웨덴에 가고 싶었지만, 막 입사한 자신에게 그런 제안을 할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비행기 탑승구를 오르는 느낌을 상상해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미국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비행 중임을 느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 후 비행기가 착륙하는 것을 느끼며, 스웨덴에 도착해 주변에서 스웨덴어가 들리는 것을 상상하라고 했습니다.
6개월이 지났을 때, 이 신사분은 회사를 대표해 스웨덴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그는 제 조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아름다운 물방울 모양의 크리스털 꽃병을 제게 선물했습니다. 상상은 그것 안에 스스로를 현실로 펼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상력이야말로 불멸하고 창조력을 지닌, 당신의 진정한 몸입니다.
상상 속 당신이 있는 곳으로 육신을 갖고 가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당신의 의식이 있는 곳에 존재합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은 창조 행위가 아닙니다. 소망을 생각하면 안 되고, 그 소망이 이미 이루어진 상태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I AM”은 길입니다. “나는 ~이었다” 혹은 “나는 ~일 것이다”는 선언은 결코 변화를 만들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는 존재가 길이 아닙니다. “I AM”이 길입니다! 다시 말해 의식이 길입니다! “I AM”은 하느님의 영원한 이름입니다. “그분의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I AM”이라고 답하십시오.
욕망은 그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질 때까지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고 싶다면, 샌프란시스코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곳에 있다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으면서 샌프란시스코에 가고 싶다고 바라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물러서, 당신의 세상을 바라보세요.
당신은 지금 원하는 상태에서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자신을 살펴본다면, 소망을 생각하는 중인지, 소망이 이루어진 상태로부터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소망이 성취된 상태로부터 세상을 보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여전히 자신을 지금 이곳에 그대로 묶어 놓고서 소망하는 중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소망이 이루어진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습니다.
당신이 상상력 그 자체이기에, 상상 속에서 당신이 있는 곳에 실제로 존재하게 됩니다. 당신이 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말할 때, 그 묘사가 소망이 이루어진 상태로부터 바라본 세상이고 그것을 충실하게 유지한다면 소망은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성경은 상상력에 대한 위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직 그렇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블레이크는 “바보에게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대의 현자들은 명확하게 의미가 드러나지 않을 때가 오히려 가르치기 적합하다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배우고자 할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세, 솔로몬, 이솝, 호머, 플라톤에 대해 말합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순수한 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편과 예레미야에서는 이 일련의 사건들을 시의 형태로 나타냅니다.
누가복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을 처음부터 목격하고 말씀의 일꾼이었던 사람들에게 전해진 대로 기록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더라. 나도 처음부터 모든 일을 꼼꼼하게 살펴본 후 가장 존경하는 데오빌로에게 차례대로 기록하여, 당신이 이미 배운 것들에 대한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나이다.”
누가가 이야기를 전하는 대상인 데오빌로는 하느님을 더 알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상태에 있는 자를 말합니다. 바로 여러분입니다. “데오빌로”라는 이름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를 뜻합니다.
누가는 성경의 사건들을 기록하려 했던 이들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경의 사건들이 시간 순으로 정확하지 않음을 알고, 순서대로 기록하려고 합니다. 누가는 목자들이 밤에 양들을 지키고 있는 이야기와 하늘에서의 합창 사이에는 수년의 시간적 간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경우에는 천사들의 합창 후 15년이 지나 목자들이 양을 지키는 이야기가 나타났습니다. 누가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순서를 이야기 형식으로 전하며, 이전보다 더 잘 배열했다고 주장합니다.
만일 당신이 그가 전한 말을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해석한다면 결코 그것이 담고 있는 신비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원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일련의 사건들은 각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여성에게서 태어난 모든 아이들은 이 경험들을 모두 겪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스스로를 깨우는 과정입니다.
전도서의 “그분은 영원을 인간의 마음 안에 두셨더라”는 말처럼, 하느님은 실제로 그분 스스로를 우리 안에 눕혔습니다. “영원(eternity)”이라는 단어는 “소년, 젊은이, 청년”을 뜻합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있던 아이가 바로 이 “영원”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을, ‘아들로서의 하느님’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모든 존재 안에 내재된, 아버지로서의 하느님, 아들로서의 하느님, 성령으로서의 하느님은 깨어나서 하느님의 아들로 나타납니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근원 안에 있는 무한한 사랑은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입니다. 창조의 표현 속에서 드러나는 무한한 사랑은 아들 하느님입니다. 영원히 계속되는 무한한 사랑은(Infinite Love in eternal procession) 성령으로서의 하느님입니다. 이 셋은 하나입니다!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의 무한한 사랑입니다! 이보다 더 간결한 표현은 없습니다.
존재에 대한 이 멋진 개념을 받아들이세요. 머릿속에서 들리는 쉿쉿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 소리에 당신이 듣고 싶은 말을 담아, 그 말이 현실이라고 믿으세요. 이 말들에 믿음을 지닌다면 그 무엇도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당신과 하느님 사이에 어떤 중재자도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과 하느님 아버지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블레이크가 했던 것처럼, 당신이 지닌 하늘나라의 재능을 사용하세요. 블레이크는 자신의 신비한 경험들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육신을 벗어나는 법을 알았으며, 정신적 여행자가 되어 그의 여행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남자들의 땅을 여행했고, 남자와 여자의 땅도 여행했으며, 차가운 땅을 떠도는 방랑자들이 결코 알 수 없는 끔찍한 것들을 보고 들었다.”
그런 다음 그는 아이의 탄생을 멋지게 묘사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는 기쁨 속에서 태어나지만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잉태되었네. 쓰라린 눈물로 뿌린 열매를 기쁨 속에서 거두는 것처럼.”
“그리고 만약 태어난 아이가 남자라면 그 아이는 나이 든 여인에게 맡겨지고, 그녀는 아이를 바위에 못 박고, 그의 비명을 황금잔에 받아낸다.” 당신은 이 육신에 못 박혀 있지만, 육신에서 벗어나 블레이크가 시에서 말한 청년처럼 강해질 수 있으며, 이 육신을 통해 당신이 세상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당신의 상상력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에게 모든 것은 가능합니다. 당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생각에 충실히 머물면, 아무것도 당신이 그것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기억하세요. 당신 앞에 놓인 장벽은 실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외부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소망하는 그 상태에 거한다면, 당신은 그 모습이 될 것입니다.